제 10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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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조의 ‘사람이 보험이다’<21>]어제, 오늘 그리고 이어지는 삶

매우 피곤하다. 눈이 감긴다. 어젯밤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도착할 때까지도 부고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 다른 가족의 부고를 오타를 낸 게 아닐까? 유가족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당장 전화하고 싶었지만, 그 전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비단 나뿐이 아닐 거 같아서 일단 장례식장에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도착해서 보니 장례식장 안내 화면의 영정 사진들 중 유독 젊은 사람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세상에 진짜 내가 아는 그 사람의 부고가 맞았다. 10여 년 전 내가 암진단금을 손해사정해 준 뒤로는 평소 일상을 공유하지는 않더라도 예민한 망인의 아내가 사소한 어려움도 상의했었는데 최근에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던 나에게 그의 부고는 날벼락 같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내실에서 망인의 아내가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중학생 정도 되는 망인의 아들이 상복을 입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고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들 모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던 건 가족들한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사정을 들으니 뇌종양 병력을 가진 망인이 갑작스러운 뇌압 상승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분명 전조 증상이 있었을 터인데 나한테 미리 전화 좀 주었더라면….’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아무 소용 없이 마음만 아플 말.

망인의 가족과 인연이 시작된 건 아내가 망인과 연애하던 시절인 20년 전부터였다. 그 20년 동안 굽이굽이 사건 사고를 함께 상의하며 지냈는데 이렇게 큰일에 나도 그의 가족들도 속수무책이었다. 내실에서 들려오는 통곡을 들으면서 울컥하는 눈물이 가족도 아닌 내 것이면 안 될 것 같아서 눈물을 삼키느라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밥을 먹는 동안 겨우 진정이 된 망인의 아내는 나를 마주하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소리내어 울 힘은 이제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눈물이 났지만 같이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더 오래 안아주고 싶었지만, 남은 그녀의 곁에 있어 줄 가족들한테 양보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운전하는 내내, 밥을 게걸스럽게 먹는 내내 고민했었지만 결국 위로는 없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내가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척하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다. 슬퍼하고자 함이 유가족에게 폐가 될까 염려되어 결국은 아무 감정 없는 얼굴이 되어버리곤 한다.

“도울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표현의 전부였다. 직업상 사망진단서를 일반인에 비하면 흔하디흔하게 본다. 그렇지만 반복해도 무뎌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랑 눈을 맞춘 사람의 것은 마치 그 종이가 가슴을 베어내는 것 같이 쓰라리다. 식사라도 한 끼 나눈 기억이 있다면 그건 슬픔이 아니라, 말 그대로 통증이다. 망인이 이 세상에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한 아픔.

하물며 내가 이럴진데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요즘 표현으로 ‘F(감성적)’인 나의 아픔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쩜 저럴까 싶게 나는 차분하고 냉정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절제한 감정들은 쌓이고, 쌓인다. 쌓인 감정들은 언제 어느 날 생겨난 건지 알 수도 없는 것들이 모이고, 뭉치고 뭉친다. 시간이 지나서 무슨 명목으로 드러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덩어리들. 하지만, 나는 유가족과 아픔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충분히 울고 난 이들과 앞으로 살날에 대해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가족이 떠난 후에도 살아야 함을, 살기 위한 행위를 이어나가야 함을 기억하려 한다.

죽음을 많이 대하고 생각하는 덕에 오히려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덤덤해진다. 내가 지금 당장 죽을 거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사람에게 나를 만나러 당장 다 집어치우고 달려와야 된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에게는 마지막인 오늘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내일과 이어지는 오늘이니까. 죽은 사람의 오늘과 살아있는 사람의 내일은 이어져 있는 거니까.

출근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망인의 보험증권을 뒤져본다. 망인이 떠난 어제와 나의 오늘을 이렇게 이어나간다. 망인이 나에게 말할 수 있다면 어제 장례식장에서 부탁했을 것 같은 일을 해주려고 한다. 생존하는 피보험자가 본인의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과 망인의 보험금을 남은 가족이 청구하는 것은 결이 다르다. 유가족들은 보험금 청구서를 쓰는 것도 고통이고, 망인의 사망이 확인되는 기본증명서 등의 서류를 보는 것도 힘들어한다. 일을 하면서 사망보험금 서류 보완이 필요할 때가 힘들다 느껴지는 이유다. 유가족들한테는 추가서류 준비가 그냥 절차대로 움직이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명확한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한 그 고통들을 다 감내해 내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잘 살아낸다. 살아있다는 건 그런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한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격하게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삶이란 그 자체가 고통일 때도 많으니까. 하지만 살아있음을 알아차리는 오늘을 사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내가 이 글을 쓰고 있고, 살아있는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나니 당신이 이어서 읽는다. 나의 하루와 당신의 하루가 연결되어 나가는 삶. 우리는 살아서 이어나간다.


<대한민국 대표 보험신문> 한국보험신문


이현조 손해사정사
손해사정법인 하늘 대표

이현조 thinkinsuran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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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22:36: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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