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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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엽의 ‘만만보(萬漫步) 산책’]출근시간대 경의중앙선 열차 객실의 진기명기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매력 중 하나는 타고 내릴 때까지 지하 구간이 거의 없어 열차 객실에서 야외 풍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창밖에서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감상하다보면 열차는 어느새 내릴 역에 닿아 출퇴근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런데 기온이 내려가고 해가 짧아지면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절반으로 줄었다. 가을로 접어들며 출근길 승객은 부쩍 늘어나고 퇴근길은 캄캄한 밤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별 일 없으면 탄현역에서 오전 7시 30~40분대 출발하는 열차로 출근한다. 가장 붐비는 시간대로, 직전 열차가 떠난 뒤 바로 플랫폼에 도착하지 않으면 창밖을 볼 수 있는 객실 좌석 부근은 아예 포기해야 할 정도로 처음부터 만원이다. 입석 승객을 위한 손잡이가 있는 곳은 운정역이나 야당역에서 탑승한 승객들이 이미 점령해 있고, 손잡이 사이 객실 통로 부근은 앞줄 승객들로 가득 차 빈 공간이 없다. 뒷줄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던 승객들은 별 수 없이 출입문 부근에 몰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앞뒤로 밀리고 좌우로 흔들리며 신촌역이나 홍대입구역까지 가게 된다.

출근시간대 경의중앙선 열차 객실에서는 밖을 볼 수 없는 곳에서도 아찔한 요소가 자주 발생한다. 대부분 ‘진상’ 승객들의 민폐유발 행동에서 빚어지는 일이지만 ‘진기명기’도 심심찮게 연출된다. 이 부문 대상은 거의 떠 있는 상태로 서서 풀메이크업하는 젊은 여성 승객의 차지가 아닐까 한다. 좌석에 앉아 무릎을 화장대 삼고 왼손에 거울을 쥔 채 오른손으로 각종 화장품과 화장도구를 들고 화장하는 모습은 종종 봤지만 며칠 전 홍대입구역에서 내린 20대 여성의 솜씨는 단연 압권이었다. 그는 흔들리는 열차 객실 통로에 서서 두툼한 파우치를 열고 갖가지 화장품과 화장도구를 바꿔가며 기초화장부터 색조화장까지 한치의 오차없이 수행했다. 눈을 위로 치켜뜨고 끝이 뾰족한 아이 라이너로 라인을 그려낼 때는 옆에서 슬쩍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뷰러로 속눈썹을 집어 올린 다음 입을 벌리고 오무리면서 입술 메이크업까지 끝낸 그는 “이번 역은 홍대입구, 홍대입구역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들릴 때쯤 파우치를 가방에 넣었다. 도대체 그처럼 뛰어난 균형감각과 정교한 손기술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출근시간대 경의중앙선 열차 객실에서 볼 수 있는 균형감각과 정교한 손기술은 2030세대 RPG 게임족도 빼놓을 수 없다. 오로지 두 발로만 중심을 잡고 엉거주춤 서서 열차가 몹시 흔들려도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양쪽 손가락을 놀려 정확히 자판을 누르며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독수리 타법에 간단한 문자 쓰기도 버거운 처지이다 보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들 옆이나 뒷쪽에 있다 보면 과도한 손놀림에 팔꿈치로 옆구리 찌름을 당하기도 하지만 진지하고 숙연한 표정을 보면 나무랄 수도 없다. 통근 시간이 긴 수도권 외곽 주민은 RPG 게임을 익히면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게임을 하다 보면 1~2시간은 금세 지난다고 한다. 경의중앙선 열차는 중도에 내리는 사람이 적어 일단 타면 내릴 때까지 빈 좌석이 생기지 않다보니 뛰어난 균형감각과 정교한 손기술이 요긴하게 쓰이는 듯하다.

요즘 열차 내에서 책 읽는 승객이 많아졌다. 읽고 있는 책을 슬쩍 보면 대부분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작품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불과 닷새만에 그의 작품들이 100만권 넘게 팔렸다고 한다. 또 한강 책을 사러왔다가 옆에 놓인 소설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낙수효과로 전체 소설 하루 판매량도 10배 가까이 늘었다고 하니 가히 한강 신드롬이다. 이참에 콩나물 시루같은 열차 객실에서 두 발로 꿋꿋하게 중심을 잡고 한 손으로 책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장을 넘기는 청춘들을 더 많이 봤으면 한다.

그러다보면 골프에서 박세리를 보고 박세리 키즈가 나오고, 피겨에서는 김연아가 있어 김연아 키즈가 나왔듯이 문학계에서는 한강 키즈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강을 잇는 수상자가 배출돼 “젊은 시절 흔들리는 경의중앙선 열차 객실 통로에 서서 읽은 책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수상 소감을 날리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열차는 어느새 내릴 역에 닿았다.


[한국보험신문=본지 주필]

전인엽 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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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0 22:55: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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