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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강사의 ‘60+Life story’]끊을 건 끊어야 한다 |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은 시절이 하 수상(殊常)하게 느껴진다. 신문을 보아도 온통 낯부끄러운 기사들로 가득하다. 위아래 할 것 없이 헛발질만 눈에 보인다. 단순한 헛발질이면 애교로 넘기겠지만, 심각한 헛발질은 쓰나미보다 더한 후폭풍을 각오해야 하니 왜 안 그렇겠는가?
인간이 지닌 최대 장점은 소통이다.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같을 순 없다. 그렇다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은퇴를 앞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 2막은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다. 그러니 실수와 헛발질도 이상할 건 없다.
흠 없이 완전한 사람은 없다. 흠에서 ‘ㅎ’ 밑에 ‘ㅡ’를 ‘ㅣ’처럼 세우면 힘이 된다. 흠을 힘으로 바꾸려면 흠을 탓하면서 밀어내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은퇴 준비 최고의 방법은 인생 2막을 먼저 경험한 선배들의 흔적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 방법도 바뀐다. 먹고, 자고, 노는 방식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별나라 생명체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선배들이 남긴 삶의 흔적은 굉장히 중요한 인생 기록물인 셈이다.
그럼에도 나의 은퇴는 그들의 은퇴와 다르다고 인식하는 예가 적지 않다. 선배들의 꼴사나운 헛발질을 보면서 그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인생 후배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선배들의 은퇴 헛발질은 분명한 흠이다. 하지만 그들의 실수를 현실에 맞게 바꾸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은퇴 오답 노트를(흠), 정답 노트로(힘) 바꾸는 것이, 인생 후배들의 몫이라고 말하면 너무 과한 주문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흠을 힘으로 바꾸려면 ‘ㅡ’를 ‘ㅣ’로 이동시켜야 한다. 이는 누워있다가 일어서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ㅡ’는 현재의 나를 지배하는 ‘익숙한 선택’이다. 반면에 ‘ㅣ’는 은퇴한 선배들의 오답 노트를 정답 노트로 바꾸는 ‘새로운 도전’이다.
은퇴 선배들의 인생 2막 여정은 행복보다는 근심이, 넉넉함보다는 궁핍한 삶이 다수다. 어찌 되었든 은퇴 준비를 못한 탓이다. 그들은 자식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나이 든 부모님 봉양하느라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개중에는 자녀들이 출가한 이후에도 알량한 자산을 헐어 지원하는 예가 적지 않다.
자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문제는 익숙함이다. 부모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묵시적 동의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의 경제력도 한계는 있다. 은퇴하고 나면 소득은 급락하고 건강은 나빠지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인 자녀를 지원하는 것이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처럼 생각한다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자녀 교육은 부모의 책임 범위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자녀 결혼 이후까지 지원한다면 자녀도 부모도 공멸이다. 자녀가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부모라는 이름으로 박탈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성인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끊어야 한다. 은퇴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자녀에게 올인하는 경제적 지원은 위험한 짓이라고 말한다. 박범신의 장편 소설 ‘소금’에 이런 글이 있다.
“특히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된 빨대는 늘 면죄부를 얻었다. …… 사람들은 핏줄이라고 말하면서 핏줄에 감동되도록 교육되었다. …… 핏줄조차 이미 단맛의 빨대들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스물이 넘은 자식들조차 핏줄이므로 늙어가는 아비에게 빨대를 꽂아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끊어야 할 것은 반드시 끊어야 한다. 그것이 자녀와 부모가 공존하는 지름길이다.
<대한민국 대표 보험신문> 한국보험신문
이종범
제3의 나이 연구소
금융노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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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k-j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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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5 23:53:2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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