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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논단]실손보험, ‘실손’ 그 자체가 문제다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의료개혁”이라면서 “의료개혁 2차 과제로 예정돼 있는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 7일 임기 반환점을 계기로 진행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도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연내 개선안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입을 열 때마다 현상에 둔감하고 편협한 시각과 공감력 부족으로 국민적 답답증을 유발하는 대통령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 만큼 비급여와 실손보험은 의료개혁의 핵심 대상이다.
실손의료보험(實損醫療保險)은 질병 혹은 상해로 치료를 받았을 때 보험가입자가 의료기관에 실제로 지급한 비용을 그대로 보상하는 보험상품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 부호가 생긴다. 보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가 ‘실제 발생한 손해만 보상해준다’는 ‘실손보상의 원칙’인데 왜 굳이 ‘실손’이라는 말을 붙였을까. 필자는 실손보험 문제의 본질은 바로 ‘실손’이라는 말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보험이란 무엇인가.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이희승 편저)에는 ‘사망·화재같은 우연한 사고 발생의 위험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미리 일정한 부금(보험료)을 거둬 쌓은 뒤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그 적립금에서 일정 금액을 지급해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로 뜻풀이를 하고 있다.
사전적 해석만으로도 ‘우연한 사고’(보험사고)는 ‘사고를 당한 사람’(피보험자, 보험가입자)이나 ‘일정 금액 지급을 담당하는 쪽’(보험자, 보험사) 모두에게 일어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죽어야 보험금이 나오는 사망보험을 비롯해 암보험과 같은 질병보험, 손해보험 영역의 화재보험, 재물보험, 상해보험 등 일반적인 보험상품 가입자라면 보험사고를 반길 리 없다. 보험금이 아무리 후하더라도 보험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보다 나을 리 있겠는가.
그런데 실손보험은 이런 원론적 보험상품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보험사고가 일어날수록 혜택을 많이 누리고 만족도 또한 높아진다. 실손보험은 보험가입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의료비용(국민건강보험 비급여+급여 본인부담금)을 그대로 보상하기 때문에 비급여와 급여 본인부담금이 크면 더 이득을 보게 된다. 또 의료기관은 실손보험 가입자를 많이 받을수록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같은 특성으로 인해 실손보험은 의료쇼핑·과잉진료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최근 1년 사이 집에서 가까운 주상복합빌딩과 상가 건물에 병원 여러 곳이 새롭게 문를 열었다. 정형외과, 통증클리닉, 가정의학과로 비급여 진료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주요 손보사 5곳의 올해 상반기 실손보험금 지급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의 비급여 비중은 각각 71.0%, 70.4%에 달했다. 정형외과 등 비급여 비중이 높은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비급여 상담사를 따로 두고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뒤 가입 환자에겐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치료, 비급여 주사제 처방 등을 권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손보험이 이처럼 비급여 진료 비용을 보상하기 때문에 정형외과를 비롯해 경증환자가 많은 가정의학과,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에서는 경증 치료만으로도 손쉽게 돈벌 수 있다. 실손보험 가입 환자를 유치해 고가의 비급여 치료를 받게 하면 된다. 가입자 또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고비용 경증치료는 과잉진료와 의료쇼핑의 집중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도 일부 손보사에서 실손보험을 운영하고 있으나 비급여 비중이 작고, 보험상품 대부분 보험치료가 많으면 갱신 때 보험료가 폭증하는 구조로 돼 있어 우리나라처럼 실손보험이 의료쇼핑과 과잉진료로 이어져 의료시장을 왜곡시키는 일은 드물다. 결국 의료개혁의 핵심은 실손보험의 ‘실손’ 영역을 줄이는 것이고 답은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확대에 있다는 얘기다.
[한국보험신문=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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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엽 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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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7 22:42: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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