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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시대가 변해도 ‘방판’은 영원하다 |
현재 방영 중인 JTBC 주말극 ‘정숙한 세일즈’는 1992년 한 시골 마을에서 각기 다른 사정을 품고 자립하기 위해 성인용품 판매를 시작한 여성 4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당시 금기였던 성인용품을 파는 ‘방판 시스터즈’가 수모를 당하면서도 앞을 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드라마는 흥미로운 소재에 배우들의 맛깔 나는 연기가 더해져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쾌감을 전하고 있지만, 기자는 ‘방판(방문판매)’라는 소재에 가장 흥미를 느꼈다. 과거 고객 유치를 위해 집집마다 부지런히 뛰어다녔다는 ‘보험설계사’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보통 방판이라고 하면 ‘화장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 상황에 맞는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방판은 1980~1990년대 절대적인 화장품 유통 채널 중 하나였다. 2000년대 초 중저가 로드숍과 이커머스가 등장하며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방판은 고객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 신뢰와 편리함 때문에 명맥을 유지해 왔다. 현재도 화장품 업계에서는 방문판매 채널을 가동하고 있으며, 건강기능식품이나 일반 생활용품 등도 판매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 발달로 2030의 젊은 층도 고객으로 편입하고 있는 ‘방판’이 ‘대면영업’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 보험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험설계사’란 명칭은 1980년대 들어 보험산업이 발달하고 보험상품이 복잡해짐에 따라, 단순히 보험을 모집하는 것을 넘어 고객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상품을 설계하고 제안하는 역할이 강조되면서 등장했다. 당시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사람들은 학력이 필요 없고 자본이 없어도 경험이 부족해도 할 수 있던 직업으로 보험설계사를 선택했고, 특히 생계형 주부 설계사들이 대거 보험 시장에 진입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보험 가입에 취약했던 중·저소득층의 보험 가입을 돕고 동시에 여성이 일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며 보험산업의 ‘역군(役軍)’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전 기자가 만난 한 설계사는 “보험설계사로 일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하루에 고객 5명을 만나자는 원칙을 정했고 지금도 철저히 지키고 있다”며 “한 손에는 빵 봉지를 들고 대형 주점이 밀집한 지역을 돌려 보험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관심을 보인 사장님들이 하나둘 상품에 가입하면서 고객을 늘려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험에 대한 사람들 인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보험에 가입하기 전 충분히 계약 내용을 공부하는 고객들도 늘고 있으니 이들을 만족시키려면 보험설계사도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초창기 보험설계사는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흘러 보험상품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점차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다. 이들이 자신을 보험설계사가 아닌 보험전문가로 불러달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보험산업도 큰 변화를 맞이했다. 비대면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보험설계사들은 데이터 분석과 활용을 통해 다양한 영업 방식을 시도했다. 또 과거 지인 등을 이용한 인맥 영업에서 벗어나 인터넷 등을 통한 네트워크 방식을 활용하거나 기존 고객과의 계약 리스크를 분석해 추가 판매하는 식의 영업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보험 생태계는 보험설계사를 통한 대면 계약이 더욱 익숙하다. 더구나 고령층의 디지털 채널 활용도는 여전히 미흡하다. 60대 이상 고객의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도는 젊은 층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보험상품의 복잡도가 높을수록 금융소비자의 대면 요구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더욱 대면영업과 사람의 힘이 필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숙한 세일즈’에서 ‘방판 시스터즈’가 성공과 미래를 향해 나간 것처럼 보험업계에서도 사람을 통해 세상을 이어가는 장면을 기대해 본다.
[한국보험신문=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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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raya21@in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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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3 23:17:4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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