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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 정담]겹경사인 노벨상 |
소설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문학이 한국인만을 위한 문학이 아니었음이 공인된 것이다. 남북한과 해외동포를 다 합치더라도 모국어로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1억 명이 안되는 상황에서 이루어 낸 쾌거이다.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한 한류 문화 약진의 힘을 입었고 한국어로 사유와 창작을 거듭한 문학인들과 열정적인 번역가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혹자는 한강의 소설이 역사왜곡이므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강의 작품은 보도가 아니고 소설이며, 문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4월 제주와 5월 광주에서 공권력과 민간인 간 극렬한 물리적 충돌이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므로, 한강의 작품이 제주와 광주에서의 처참함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 역사왜곡이 될 수는 없다.
한강의 4월 제주나 5월 광주에 대한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위를 할 것이 아니라, 한강과는 다른 해석을 담은 역사소설을 쓰면 된다. 그것도 잘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심지어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 된다. 왜 문학에 대한 대항이 문학이 아니고 시위가 되어야 하는가? 한강은 한국사의 가장 치열하고 처참한 현장에서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길어 올렸다. 또한, 4월 제주나 5월 광주는 그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4월 제주는 대한민국 국가 형성의 여명기의 이념대립으로 초래되었다.
하나는 유엔 감시가 가능한 남한에서라도 총선거를 통해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한에서의 총선거를 통한 단독정부의 수립은 영구분단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러한 존재론적 위기를 맞았고 제주에서의 상처를 안고 신생국가는 탄생했다. 5월 광주는 박정희가 남긴 유신헌법과 민주화를 요구한 시민들이 정면충돌한 사건이었고, 시민들은 패배했으나 이 패배는 1987년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연꽃이 진흙에서 피어나듯이 제주와 광주에서의 비극을 모태로 태어난 것이다. 5·18을 헌법 전문에 넣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그러하다. 한강이 이 처참함으로부터 빛나는 문학을 피워냈듯이 한국은 이 처참함으로부터 빛나는 국가를 만들어 냈다.
이번 노벨 경제학상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역작을 쓴 경제학자 3인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포용적인 국가가 왜 성공하고 착취적인 국가가 왜 실패하는지를 역사적인 실례를 들어 논증했다. 이들은 남북한을 국가의 성공과 실패의 극명한 예로 들었다.
남북한은 인적 구성과 문화가 동일하고 국가 규모와 지정학적 위치가 유사한 반면, 전혀 상반되는 국가전략을 취했으므로, 제도가 국가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교과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북한의 김일성이 자력갱생을 외칠 때 남한의 박정희는 무역입국을 외쳤고,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는 수십 년 후 비교 불가능한 차이를 가져왔다.
한국에서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흔히 상충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들 경제학자에 의하면 산업화 시기는 사유재산권의 확립, 성과보상, 수출주도를 통한 세계경쟁에의 노출, 인적·물적 자본의 축적을 통한 기업의 성장 등을 통해 포용적 제도의 기반을 닦은 것이고, 민주화 시기는 정치적 민주화, 민간부문의 자율확대, 시장개방 등을 통해 포용적 제도를 정착한 시기이다.
한국은 불과 3세대 만에 이러한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함을 통해, 식민지 피지배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정치·경제적으로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유일한 국가이다. 이들 경제학자가 받은 노벨 경제학상은 사실 한국의 정치·경제에 대해 수여된 상이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 더해 한강의 문학상은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해 수여된 상이다. 겹경사라 아니할 수 없고, 시위해야 할 일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막론하고 모여서 잔치를 벌여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대표 보험신문> 한국보험신문
이수현 변호사
이수현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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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이수현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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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7 23:16:0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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