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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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 정담]‘단톡방’ 단상
지금은 높이 솟은 건물로 새 단장했지만 종각의 널리 알려진 한식 맛집은 한옥으로 지은 한일관이었다. 베이비부머들의 성장기에는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도 많이 이뤄지고 칠순이나 환갑잔치가 열리는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점잖은 모임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던 명소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르신들의 동창회, 계모임 장소로도 각광받았다. 식사를 마치면 오늘의 참석자들은 가까운 커피숍에 들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순서다. 한두 시간은 족히 저마다 준비한 소식을 나누곤 했다. 그래도 젊을 때는 화제의 다양성이 잘 갖춰져 있었다. 여행 얘기는 단골 메뉴면서 각광을 받았다. 가장 최근 얘기라서 더 핫하다. 직접 체험한 얘기는 원곡을 부르는 가수처럼 화자만이 더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 모든 스토리에는 과장이 추가돼야 제맛이다. 얼마나 흥미진진하겠는가. 투자정보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누구나 경제적 자산을 키우는 게 꿈이다. 지금이야 부동산 얘기가 가장 뜨거운 토픽일 것이다. 성공담과 실패담이 오가면서 누군가는 환호를, 누군가는 탄식을 토해낸다. 다음 차례는 오늘 이 자리에 불참한 누군가의 뒷담화다. 좋은 얘기든 궂긴 소식이든 망라하지 않는다. 자식 얘기, 건강 얘기, 부모 얘기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드디어 정치 얘기가 등장하곤 한다. 이쯤 되면 참석자 누구나 오늘 모임이 파할 때가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는 순간이다. 고성이 오가고 자칫 편가르기할 때도 있다. 등장인물이 가장 많은 순간이다. 이때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정치인도 만난다.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얘기했듯이 현대 사피엔스가 수만 년 전 획득한 인지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수다 대부분을 주로 소문을 공유하는 데 많이 쓴다. 오늘날에도 의사소통의 대다수가 남얘기다. 이메일이든 전화든 신문 칼럼이든.

디지털 세상이 오고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우리나라도 전 국민이 애용하는 ‘국민톡’이 생겼다. 오프라인에서 소식을 전하기 바쁜 사람들은 톡방이 더할 나위 없는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특히 오프라인 ‘계모임’을 단톡방에서 해결하게 된 게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3년간 언로가 막힌 이들에게는 숨통을 열어주는 해방구였다. 외로움과 울적함을 위로해 주는 요술 방망이였던 셈이다. 쉼 없이 울려대는 ‘톡톡’ 소리는 바람이 가져오는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거나 비올 때 울어대는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 정도다.

문제는 세 명이든, 열 명이든 수십 명이든 여기서도 말이 많은 사람, 말이 없는 사람, 오해하는 사람, 소심한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어떤 토픽에 대해 회피하고 싶지만 대답을 강요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내 이름을 공지하며 윽박지르기도 한다. 톡방에서 원하는 방향일 때는 슬쩍 넘어가겠지만 반대의 목소리를 낼 때면 먼저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안되는 이유를 대라고 하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어느 톡방에서는 한두 사람의 목소리가 대부분 콘텐츠를 차지하기 일쑤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직접 만나서든 비대면이든 평소의 사교성을 앞세워 수다스럽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다수의 참여자들은 소위 눈팅을 즐길 뿐이다. 상대방을 의식해 자기주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온·오프를 떠나 공통적이다. 소수가 쏟아 놓는 목소리가 처치 곤란한 공해가 될 때도 있다. 때론 읽어내기도 힘든 방대한 지식을 뽐내는가 하면 시종일관 비판만 하거나, 끝이 없는 제 자랑 일색일 때도 많다. 최근 ‘조용한 탈출’이라는 시스템의 보완도 이뤄졌지만 금세 알려질 게 뻔하다.

학생들 팀플(단체활동)도 톡방을 통해 이뤄진다. 온·오프를 가리지 않는 효율성은 기성세대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현실이다. 학교 수업에는 지각할 수 있지만 톡방 입장은 잘 지키는 듯해 보인다. 이들은 이미 구성된 톡방의 파괴도 순간이다.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으니 쿨한 결정이다.

말보다 문자는 훨씬 정제되는 게 일반적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구설에 올라 내 평판을 몽땅 잃기도 한다. 문자, 글로 표현하게 되면 생각을 정리하는 여유가 생긴다. 설화의 위험성이 훨씬 낮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톡방은 다른 듯하다. MZ세대뿐 아니라 그 한 참 윗세대도 핑거링이 뛰어나다. 필요가 발전을 가져온 셈이다. 동시통역도 가능하다. 톡방의 주고받는 대화의 속도는 무척 빨라 정제될 겨를이 없다. 손가락이 천 냥 빚을 갚지 못하고 필화를 입게 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아고라의 현장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외면할 수도 없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된 게 단톡방이다.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면이 훨씬 돋보이는 공간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시공간을 초월한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생활의 편의를 가져다주었다. 게다가 아침마다 공짜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명화를 보내 주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같은 아름다운 음악을 배달해 주는 후배가 고마울 따름이다.


<대한민국 대표 보험신문> 한국보험신문


박치수 교수
청주대학교
前 교보생명 전무

박치수 청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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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9 22:49:53 입력. 최종수정 2024-09-29 22: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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