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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응급실은 무정부 상태 |
대학생 딸은 방학을 맞아 엄마와 함께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지난주 화요일 저녁 해외에 있던 딸이 울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앞이 안 보여.” 눈이 세균성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빠인 필자도 적잖이 당황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눈이 안 보인다니….
필자는 주변에 도움을 청해 우선 현지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도록 했다. 4시간을 기다려 응급처치를 했지만 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딸에게 여행을 중단하고 급히 귀국하라고 전화했다. 임시 비행기 편은 금방 확보됐다. 필자는 인천공항까지 나가 저녁 10시에 딸이 귀국하자마자 집 주변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만 해도 의사들이 파업 중이지만 최소한 진통제 치료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기대감은 산산조각이 났다. 의사가 없어 치료는커녕 당장 통증을 줄여줄 진통제마저 처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주변 병원에 연락을 취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다는 병원부터 주변 중대형 병원까지 5곳에 전화를 했다. 모두 다 응급실 입원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19구급대에 도움을 청해 보기로 했다. 그들은 즉시 출동했다. 대원들은 2시간 가까이 춘천, 분당, 천안 등 수도권 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돌렸다. 어느 곳도 치료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필자는 갑자기 열심히 노력해 준 119구급대원들에게 미안했다. 그들에게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이제부터는 가족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서 돌려보냈다. 새벽 3시까지 응급실 이곳저곳 전화하고 돌아다닌 소득 없이 집으로 향했다. 딸 걱정 못지않게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딸은 고통 속에 아침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올해 초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 발표에 국민은 많은 지지를 보냈다.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제일 빠른 대한민국 현실에 미래 의사 증원은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반발은 과거 사례에서 보듯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정부는 긴급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의사들과 충분한 대화도 필요했다. 모든 것이 생략된 채 그저 밀어붙인 결과, 정부는 늦은 저녁 아프면 최소한 치료조차도 받을 수 없는 대한민국 응급실을 만들어 버렸다.
의사들의 파업 동안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응급실 앞에서 좌절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의사에게도 분노가 치밀었다. 의사들 또한 국민을 설득하기보다는 파업이라는 편한 자극적인 전략만을 고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쉬움이 가득했다. 마치 “이래도 항복 안 할래” 하는 막무가내로…. 늦은 저녁 아픈 환자는 진정으로 의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 응급 환자에게 응급실은 무정부 상태다.
[한국보험신문=류상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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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만 ysm5279@in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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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22:33: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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