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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도원의 ‘판례 속 보험 이슈’<12>]통지의 의무, 약관개선이 필요하다 |
[한국보험신문]‘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된지 오래다. 우리나라도 IMF 이후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근무하는 일은 드물게 되었고 기존에 근무하던 직업군 내에서 이직도 빈번해졌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정년 이후에도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나서 사무직으로 일하다 퇴직 후 요식업에 종사하게 되거나 생산직으로 근무하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등 기존에 하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군에서 근무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상해보험에 있어서 실내에 앉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군과 주로 실외에서 근무하거나 기계를 조작하는 직군의 위험성을 동일하게 보고 보험료를 산정한다면 상해사고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군 종사자는 필요 이상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게 된다. 그래서 금융감독원과 손해보험협회에서는 직업분류 및 위험등급표를 공시하고 있고 각 손해보험사에서는 피보험자가 종사하는 직군의 위험등급에 따라 보험료를 산정하고 있다.
피보험자가 상해보험계약이 유지되는 도중 기존에 근무하던 직군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위험등급에 해당하는 직군으로 이직을 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반면 피보험자가 위험도가 대폭 상승하는 직군으로 이직하는 경우에도 기존 보험료만을 납부한다면 보험사는 예측하지 못한 위험을 부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른 보험계약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게 된다.
이에 상법 제652조 제1항에서는 “보험기간 중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안 때에는 지체없이 보험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정하여 피보험자에게 통지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상해보험약관에서는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는 계약을 맺은 후 피보험자가 그 직업 또는 직무를 변경하거나 이륜자동차 또는 원동기장치 자전거를 직접 사용하게 된 경우에는 지체없이 서면으로 회사에 알리고 보험증권에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어 피보험자에게 계약 후 알릴의무를 정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은 상법 제652조 제1항에서 통지의무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이라 함은 그 변경 또는 증가된 위험이 보험계약의 체결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보험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였거나 적어도 그 보험료로는 보험을 인수하지 아니하였을 것으로 인정되는 사실을 말한다는 입장이다. 하급심에서는 위 대법원 입장을 구체화하여 “이 사건 보험계약의 약관이 요구하는 통지의무 대상으로서 직업의 변경은 ‘일정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 예상되는 업무’이면 족하고, 더 나아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통지의무의 대상으로서 직업의 변경 요건 중 ‘일정 기간’이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에 대하여 명확한 기준이 없다. 최근 적용되는 상해보험약관에서는 직업의 일정 기간에 대하여 ‘예시’로 6개월 이상이라고 정하고 있으나 6개월 이상 근무하면 직업 변경을 통지해야 할 의무가 있고, 6개월 미만 근무하면 직업 변경을 통지해야 할 의무가 면제된다고 일률적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피보험자가 제조업 공장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임원으로 재직 중 직업을 ‘사무직’ 또는 ‘제조업경영’이라고 고지하고 상해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를 상정해 보자. 그 이후 피보험자는 기존 직장에서 퇴사하고 1년 뒤 다른 회사 임원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 사이 피보험자가 지인의 부탁으로 3주 동안만 프레스 공장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산 보조 업무를 수행하게 된 경우 피보험자는 보험사에 통지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3주라는 짧은 기간에 다른 직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통지할 의무는 없다고 보아야 할까.
피보험자가 보험사에 통지하지 않고 프레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동안 실제로 상해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보험사가 보험금을 전액 지급해야 한다면 보험사는 예측하지 못한 위험을 부담하게 되고, 다른 보험계약자들은 필요이상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게 되어 부당하게 위험이 전가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소비자 권리가 회복되고 강화되는 컨슈머리즘(consumerism) 정착의 책임은 기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소비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내부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당연하듯 금융 소비자들도 지켜야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회복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의무를 강조하기 전에 기존 직군보다 위험도가 대폭 상승하는 직군에 종사하게 되는 경우에는 기간을 불문하고 피보험자가 보험사에게 통지할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등의 선제적 제도 정비로 의무 이행의 모호성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김근요 변호사
법무법인 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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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요 kykim@dowo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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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2:48:3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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